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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사랑과 그리움이자, 삶의 자양분이었습니다.”

기사승인 2020.09.18  11: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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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치 & 김치유산균작가 송보영 화가를 만나다.

   
 

종종 기자는 지방에 계신 칠순을 넘긴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통해, 그나마 서로의 안부를 전하곤 한다. 늘 대화를 시작하는 질문은 한결 같다. ‘밥은 먹었니, 집에 김치는 있고?’라고. 어쩌면 그 한 문장엔 자식에 대한 세상 모든 걱정들이 다 녹아 있을 것이다. 날씨가 덥고 또는 추운데, 자식이 옷을 잘 입고는 다니는지, 혹은 몸이 아픈 것은 아닌지, 녹록치 않은 서울생활에 홀로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게 김치는 어머니의 관심이자, 대화를 시작하는 서두이자, 때론 위로였다. 어쩌면 다 커버린 자식을 향한 마지막 애정을 전하기 위하여 그렇게 어머니는 매해 겨울을 앞두고 때맞춰 김장철에 김장을 담그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김치와 김치 속에 살아있는 유산균을 소재로 특화하여 작품을 다루는 송보영 화가 역시, 그 소재의 시작은 바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김치유산균은 눈에 보이진 않지만, 김치가 익어가며 우리에게 전달했던 건강함과 사랑이며 같은 이유로 김치 자체는 곧 무형의 선물로써 소통과 공감이라는 것이다. 김치만이 갖고 있는 회화적인 요소와 유산균의 비구상 그리고 김치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김치화가의 길을 선택한 그녀를 만나기 위해 청주에 위치한 작업실을 찾았다.

   
 

Q. 간단히 작가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A. 저는 형제 많은 2남 5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종가집 종부셨고, 오빠와 동생들이 위아래로 가득한, 형제가 많은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시절 기와집에서 온 가족이 살았었는데, 뒷마당엔 김치를 담은 항아리 장독이 묻어져 있던 기억이 납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어머니께선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 총각김치부터 배추김치, 나박김치, 동치미까지 김치란 김치는 모두 담그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저희 집이 유난히 김치를 많이 담그었던 이유는 (기자님께서도 짐작하셨겠지만)많은 형제들의 주된 반찬임과 더불어, 일 년 내내 이어지는 제사를 비롯한 각종 집안행사 때문이었습니다. 학교수업이 파하고 집에 오면 어머니께선 늘 마당 한구석에서 김치를 다듬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느덧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해서 살아보니 과거의 어머니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김치를 담그면서 생각해보니, 김치는 곧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작가님의 김치그림에도 그리움과 정겨움이 곳곳에 배어있더군요.)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그렇게 김치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자, 그리움으로 기억됩니다.

Q. 김치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시게 된 계기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틈틈이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2년 반 정도 지속했었습니다. 스스로의 삶에 있어, 오로지 저만의 것을 찾아보고 싶었던 그 때, 막연히도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습니다. 굳이 그림을 택한 이유는 좀 전에도 잠시 이야기를 나눈 애절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그렇게 취미삼아, 모든 사라져가는 것들을 수채화로 표현해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현재는 찾아보기 힘든 방앗간, 담배건조장, 옛날집들을 수시로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담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년 정도를 원 없이 그리고 나니, 정말 제대로 된 그리움을 그리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들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밥을 먹는데 앞에 놓인 깍두기가 참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습관처럼 사진을 찍어, 그림을 그렸더니 회화적인 느낌이 물씬 느껴지면서도 제 마음의 위로가 되더군요. 그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내가 김치그림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혹시 다른 사람들도 힐링을 비롯해, 적어도 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박김치, 동치미, 얼갈이, 열무김치를 비롯해 다소 일상에서 찾아보기 힘든 유채김치까지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여러가지 종류의 김치를 그려오면서 느꼈는데 김치엔 세상의 오방색이 모두 담겨 있더군요. 김치캐릭터 작품으로 보다 많은 분들께 친숙하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까지 함께 들었습니다.

 

   
 

Q. 무엇보다도 가장 컸던 마음은 어린 시절, 작가님께서 경험한 바 있는, 자녀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지 않았을까요?
A. 네. 맞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저에게 남겨주신 무형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김치를 그리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고, 다른 이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따뜻한 김치그림이 되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움’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항상 연구를 하다보니 유산균이라는 소재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김치마다 생기게 되는 유산균 또한 모두 다르더군요. 유산균 역시 소재로 삼아, 보다 회화적인 색깔을 입히면 어떨까 라는 생각까지 닿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그제서야 막연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이 조금씩 아르쉬지(수채화 전용지)에 덧입혀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유산균은 색도 다르고 모양도 모두 다른데, 보이지 않는 그리움을 유산균과 연결시키니 그 의미가 더욱 잘 드러나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유산균은 곧 어머니의 사랑과 그리움, 삶의 자양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개인전을 유산균 200호와 다양한 김치그림들로 꾸민 ‘미각전’(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Q. 작가님이 체감하는, 김치그림에 대한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A. 처음에 전시를 했을 때, 관람객들로부터 ‘이 작품은 사진이 아닌가’라는 반응이 정말 많았습니다. 작품에 임할 때, 사진을 찍어 보다 사실적으로 김치와 유산균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러한 반응이 나왔던 것은 아니었는지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작업을 할 때, 극사실로 가기 이전 어느 정도 사실적인 단계에 닿으면, 과감히 붓을 놓는 편입니다. 제 작품을 자세히 잘 보면 김치누름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치누름돌은 김치가 더욱 숙성될 수 있도록 공기접촉을 덜하게끔 돌을 김치에 눌러놓는 것입니다. 전시회 중, 어린 초등학생 친구가 저에게 저 돌이 무엇인지 물어보더군요. 이 부분을 자세히 설명해주며, 마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소통을 이루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밖에 김치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하며 연구를 이어가다 보니, 김치가 무형문화재로 등록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사라져가는 그리움의 대상으로 선택한 김치도, 언젠가는 후대에 캡슐이나 영양제 이런 식으로 대체가 될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말해, 김치 역시 언젠가는 그림으로밖에 볼 수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흙집으로 된 담배건조장을 이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후대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정(情)과 그리움을, 손맛과 정성을 기억하고 인지할 수 있도록 더욱 많은 김치그림을 그려나갈 계획입니다.

 

   
 

Q. 김치만이 갖고 있는 소재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작가로서 미술활동을 업으로 삼고 있다보니 한국적인, 전통적인 것들은 꼭 지키고 이어져야 한다는 주관을 갖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김치가 가장 ‘한국적인 따뜻함’을 잘 담아내고 있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김치는 한 가족의 삶이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만의 문화적 풍습이죠.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김장 품앗이처럼(요즘은 코로나19로 인해 좀 아쉽게 되었지만) 따뜻하게 오고가는 정이 참 좋았던 과거의 모습을 김치가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치로 느끼는 각자의 추억은 모두 다양할 것입니다. 좁은 고시원에서 라면을 먹는 누군가는 김치 한 조각에 너무나도 행복해 할 수 있고, 속을 풀기 위해 해장국을 먹을 때 깍두기가 있으면 더욱 맛있고, 김장날 정성껏 마련된 보쌈에 김치를 얹어 먹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연탄가스를 마셨다고 느껴지면 동치미 국물을 한껏 들이키기도 했었고요. 김치만이 품을 수 있는 추억은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일상에 가까이 있기에 잊어버리고 살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죠. 따뜻한 밥 한공기에 맛있는 김치 한 그릇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따뜻함. 김치는 화려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닌, 소박하면서도 일상의 한 구석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김치그림 작가로 활동하며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A. 김치작품을 꾸준히 선보여 최종적으로는 김치그림 박물관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습니다. 당연히 기회가 되고 여건이 마련된다면 충분히 노력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더라도 미래의 누군가가 어린 자녀에게 “김치는 이런 모습이었어. 김치는 엄마이자, 따뜻함이야. 우리에게도 이런 문화가 있었어.”라고 다정하게 설명을 해줄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에도 대한민국만의 김치문화에 대해 소개시켜줄 수 있는 역할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표현할 때, 사진보다 질감을 실감나게 나타낼 수 있는 그림, 그 중에서도 가장 생각나는 것이 바로 ‘김치’였으면 좋겠습니다.

Q. 끝으로 하반기 계획들을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지난 8월, 충청남도 논산 제일치과에 마련된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막 마쳤습니다. 그리고 오는 11월부터 전라도 장수 미술관 1·2관에서 개최되는 ‘장수김치전’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할 예정입니다. 특히, 사과로 유명한 고장인 장수만의 특징을 담은 전라도 장수김치 작품을 다가오는 전시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송보영 화가 프로필
현) 한국미술협회
대전미술협회, 대전사생회
대전구상작가 협회, 대전미협 여성특별위원회

충북대 평생교육원 수채화 강사
충북교원 예술 연구회 강사

E:songboyung@naver.com

 

지윤석 기자 jsong_ps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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