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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의 혼이 깃들어 있는 표충사

기사승인 2020.11.26  13: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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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충사 전경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밀양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 원년(654)에 원효대사가 가람을 창건하여 죽림사(竹林寺)라 한 것을 임진왜란 때 국가수호에 앞장선 사명대사가 구국충의를 받들기 위하여 왕명으로 사액된 표충사(表忠祠)를 이건 한 후 지금의 표충사(表忠寺)로 자리하게 되었다. 특히 임진왜란 때 승병으로 나라를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ㆍ사명ㆍ기허 3대 대사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불교의례와 유교의례가 복합된 국가제향인 향사를 영조 20년(1744년)때부터 왕명으로 시작으로 지금까지 매년 봉행하고 있다. 이에 사명대사의 호국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표충사의 진각 주지스님을 만나 보았다.

사명대사 호국성지 표충사
“무열왕 원년(654년)에 삼국 통일을 기원하고자 원효스님이 터를 잡아 창건한 죽림정사(竹林精寺)를 신라 흥덕왕 4년 때 인도스님이신 황면(黃面)선사가 현재의 자리에 재건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하였습니다. 당시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와 명약을 찾던 중, 이곳 죽림사의 약수를 마시고 병을 치유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왕이 크게 기뻐하여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여 가람을 크게 부흥시키고, 사찰명을 영정사라 명명하였습니다.”
영남알프스라 불리는 밀양 재약산(해발 1,189m) 기슭에 자리하는 표충사는 유생들을 교육하고 성현들을 제사하는 표충서원이 사찰영역 안에 있어 불교와 유교가 한자리에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유일무이한 사찰이다. 특히 신라시대 때부터 고려시대까지 보우국사(889),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국사(1286), 천희국사(1290)가 선풍을 관장하여 일국의 명찰이 되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사명대사의 8세(世) 법손(法孫)인 월파당 천유(月坡堂天有)화상이 8도 도총섭(八道都摠攝)에 올라 전국사찰(八道寺刹)의 승규(僧規)와 풍기(風紀)를 감찰 단속하는 규정소(糾正所)가 설치되었으며 근대에는 조계종 종정과 통합종단의 초대 종정을 지낸 효봉(曉峰)선사가 주석하다가 입적한 곳이다. 이로 인해 예부터 명산유곡으로 이름이 높았던 표충사 일대에는 수많은 고승대덕들이 남긴 각종 전설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현재 표충사에는 청동함은향완(국보 제75호),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중요민속자료 제29호), 표충서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를 비롯해 대광전, 안일루, 팔상전, 명부전 등 국보 1점, 보물 35점, 증요민속문화재 2점, 유형문화재 269점, 기념물 1점, 문화재자료 4점 등 300여 점 이르는 중요문화재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와 더불어 심신에 지친 불자들과 일반인들을 위해 당일형, 휴식형, 체험형, 계절형 특별형 등 산사에서 수행자의 일상을 경험하는 사찰전통문화체험인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많은 사람들이 참된 나를 찾아가고 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승려
사명대사의 법명은 유정(惟政), 당호는 사명(四溟)이고 송운(松雲)이라 불리기도 했다. 중종 39년(甲辰,1544) 경남 밀양군 무안면에서 형조판서로 추증되는 임수성(任守城)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풍천 임씨(豊川任氏)가문이며 장악원(掌樂院)의 책임자[正]를 지낸 임효곤(任孝昆)에서 증손자로서 속가에서의 이름은 응규(應奎)이다.
1559년 경북 김천 직지사의 신묵(信) 화상을 은사로 출가한 뒤 2년 만에 승과(僧科)에 합격했으며 1575년 선종(禪宗)의 수사찰인 봉은사 주지로 천거됐으나 거절하고 묘향산으로 서산(西山)대사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3년여 고수(苦修) 끝에 서산대사로부터 심요(心要)를 얻고 묘향산을 내려온 그는 35세 때 금강산으로 들어가 보덕사(報德寺)에서 3년을 지낸 뒤 팔공산(八空山), 청량산(淸凉山), 태백산(太白山)등 명산대천을 유력하며 수행에 힘썼다. 43세 되는 해 봄 어느 날, 사명은 옥천(沃川)의 상동암(上東庵)에서 간밤에 내린 소낙비로 뜨락에 떨어져 나뒹구는 꽃잎을 보는 순간 무사(無常)의 도리를 절실히 깨닫게 된 후 제자들을 돌려보낸 다음 홀로 정진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작전에 참가해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그해 3월 서울 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사명대사의 일화 중에는 유명한 일화가 많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왜장(倭將)과의 필담(筆談)으로 왜적들에게 붙잡혀 목숨을 잃게 된 산내 대중들을 모두 구호(救護)한 뒤 고성(高城)의 적진에 들어가 왜장 세 명에게 필담을 통해 “사람을 함부로 죽이지 말라(勿嗜殺)”고 타일렀더니 이에 왜장 두 명은 사명에게 계를 받고 3일 동안 공양을 하였고 3일 만에 고성에서 나와 그의 법력(法力)으로 영동 아홉 고을사람들은 대부분 참화(慘禍)를 면할 수 있었다는 일화는 대표적인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사명대사는 국방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팔공산성과 금오산성, 용기산성, 남한산성, 부산성 등을 축조하고 투항한 왜군 조총병을 비변사에 보내 조총사용법을 가르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1604년 강화교섭을 위해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 전란 당시 잡혀간 3천5백여명의 동포들을 데리고 귀국했으며 선조 40년(丁未, 1607) 가을, 치악산으로 들어가 병든 몸을 치료하였으나 병이 더욱 악화되었고 광해군 2년(庚戌, 1610)병상에서 몸을 일으켜 대중들을 불러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뤄진 이 몸은 이제 진여(眞如)의 세계로 돌아가련다. 무엇 때문에 쓸데없이 오가며 환상의 몸(幻軀)을 괴롭히랴… 나는 적멸(寂滅)의 세계로 들어가 대화(大化)에 순응하리라”의 마지막 설법을 마친 뒤 가부좌한 채 1610년 8월 해인사에서 입적했다.

조선 21대 왕인 영조때부터 왕명으로 이어오고 있는 사명대사 향사
표충사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서산ㆍ사명ㆍ기허 3대 대사의 충렬을 기리기 위해 국가제향인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표충사의 향사는 조선 제21대 왕인 영조 때부터 왕명으로 이어오는 향사로 불교와 유교가 복합된 유일무이한 국가제향이다 보니 그 의미가 특별하다. “사명대사는 불력과 지략, 그리고 담대함으로 전투를 이끌어 임진란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평양성 탈환을 성공적으로 주도하셨습니다. 이뿐 아니라 적장에 홀로 들어가 한반도를 두고 벌이는 한ㆍ일간의 교섭을 탐정하여 위기의 나라를 구해내셨으며 국력 융성을 위해 사명대사의 애국애민 정신이 스며있기를 간절히 발원하며 앞으로도 사부대중의 가슴에 표충사가 국찰로 자리매김하도록 정진할 것입니다.”
“수행하는 삶이라는 것이 반드시 힘겹고 어려운 것만은 아닙니다. 평상심을 갖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선한 마음으로 생활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수행입니다. 곧 탐(貪)진(瞋)치(痴)를 버리는 일이겠지요.”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방해가 되는 탐욕과 진에, 우치를 삼독이라 했다. “탐(貪)하는 것은 불행의 시작입니다. 진(瞋)하는 것은 병을 만들지요. 치(痴)하는 것은 문제를 만들기 십상입니다. 때문에 탐·진·치를 버린다면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행복은 찾아올 겁니다.” 또한 그는 불교에서의 완벽한 삶을 ‘하심(下心)’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을 낮춰 작은 것으로도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또 그것을 위해 진실된 노력을 할 때 비로소 완벽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는 것이다.
사명대사의 뜻과 정신을 기리며 누구나 처처에 가득한 부처님 법과 자연의 가르침으로 한량없이 나누어도 모자람이 없는 풍요의 마음을 지니며 날마다 나와 이웃이 더불어 함께하는 다복한 삶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는 진각스님의 바람처럼 사명대사 호국성지 표충사가 경남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들이 찾을 수 있는 밀양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도록 기대해본다.  

김태인 기자 red39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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