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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숙 작가, 30년의 默言!

기사승인 2022.01.19  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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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자수 이병숙 작가 2회 칼럼

 

   
 

 

연주되지 않은 선율이 하프 속에 깃들어 있을때의 음율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작가로서 30년의 묵언이라는 명제하에 여러가지 글들을 써볼까 합니다. 이탈리아의 금속공예가이자 조각가인 첼리니는 누구라도 진실하고 정직한 사람으로서, 자기 일생에 훌륭한 행적을 경험했다면 자신이 직접 이 사실을 기록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덧 한국 궁중자수 작품활동 기간만 40여년이 되고, 자수는 그야말로 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1991년도 청와대 신축 시, 청와대 총무부로부터 청와대 예술품 '진연도병풍'과 '농악도액자'를 발주 받았습니다. 제 인생의 영광의 순간이었죠. 그 해 3월 15일부터 9월 14일까지 청와대 개관식에 맞춰, 노심초사 훌륭한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기도하면서 고증에 준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청와대 만찬회장에서 손님을 맞이한 진연도병풍과 농악도액자의 사진입니다.

 

   
 

 

   
▲ 1991년 作, 270x720cm (청와대소장, 만찬회장) 진연도병풍

 

국가에 큰 일이 있을 때, 후세에 참고로 하기 위하여 그 전말 경과, 경비 등을 기록한 책을 ‘의궤’라 하고 행사장면을 그린 그림을 ‘의궤도’라고 합니다. 당시의 관제, 복식, 음악, 춤사위를 분석하여 문양을 각색하고, 궁중자수의 색채와 기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8곡 중앙에 어좌를 주축으로 그 앞에서 청학과 백학이 학춤을 추고, 그 밑에 우리나라 춤사위 선유도를 시문하고, 그 아래 종이로 연못을 만든 지당판을 시문했습니다. 학이 춤을 추다가 지당판의 연꽃을 쪼게 되면, 그 꽃속에서 동녀가 나오게 되는 듯 문양화 했습니다. 학무는 고려 때부터 전해오는 춤이기는 하지만, 굳이 시문한 뜻은 우리에겐 아직도 미래의 세계, 즉 ‘동경, 희망, 깨끗함, 아름다움’이 남아있다는 뜻입니다. 예술은 바로 현실은 아니지만 그 현실을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 1991년 作, 270x360cm, 청와대소장(충무실 북측) 농악도액자

 

농악은 세계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된 문화의 한 양식입니다. 농악은 본질적으로 공동체의 염원을 결집하는 진취적인 행위이자 신명으로 고통을 극복하는 재생과 생존의 예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은 활기있는 노동생활을 위하여, 농악을 통해 신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온 동네 화합과 풍년을 기리는 농악도 앞에서, 다섯 분의 전직 대통령들이 화해와 국가안위를 논하는 만남의 시간을 가진 것은 의미 깊은 일입니다.

 

   
 

 

“이번에 병풍 하나는 물건이다!” 건축 인테리어를 총괄했던 홍익대 한도룡 교수의 평입니다. 국내에 방한한 수많은 세계 정상들이 청와대 진연도병풍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세계평화를 위하여 개최된, ‘2012 세계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53개국 정상들을 맞이하면서도, 진연도병풍과 농악도액자는 한국의 문화를 홍보하며 외교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한국을 방한한 세계 정상 수반들의 기념촬영으로, 한국문화로서 세계 만방에 외교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작품을 제작한 작가에게 경제적 대접을, 적어도 예우를 했는가에 대해선 매우 아쉬운 마음입니다. 그 당시, 청와대 총무부에 제출한 명세서에는 인건비, 자료비만 청구되어있을 뿐, 작가와의 협의금 및 작품비는 누락된 상황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러더군요. '대통령 감사패나 받고 영광으로 알라'라고요.​ 혼자 힘으로 작품활동을 영위하는 작가에게는 매우 큰 후유증이었습니다. 살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체념하기에는 인체에서 가장 약한 눈공(눈을 써서 일하는 품)으로 한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경제적으로 현실과 부딪히곤 하면 늘 그 때의 일이 생각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상적인 해결이 있었다면 자수작품 활동을 하는데 있어, 얼마나 큰 발전이 있었을까요.​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처럼 이어진 청와대 민원은, 어느 변호사도 개입을 원하지 않았고 더더욱이 저는 아무런 힘이 없었던 것이 아쉽고 씁쓸합니다. 하늘 아래, 한점 부끄럼이 없는 진실이기에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작가 본인만이 이 문제를 진실과 정직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글 | 가금(佳錦) 이병숙 작가

 

지윤석 기자 jsong_ps13@naver.com

<저작권자 © 파워코리아 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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