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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순 박상근 부부화가의 고희기념 ‘동행70’을 마주하다

기사승인 2024.05.24  10:4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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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소암 박상근 화가]

딱 10년 전 이맘때 즈음이겠다. 부부작가인 구하 신정순 선생과 소암 박상근 선생은 2015년 봄, 서울 인사동에서 60년 아름다운 동행전을 개최했었다. 이른바 미술계의 돈키호테라 불리며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이사장으로서, 그리고 미술행정가로서 바쁜 나날들을 보내온 박상근 화백은 바쁜 하루를 쪼개 본업인 작품 활동에 집중해왔다. 특히,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와 전통미술 여성작가회 감사를 역임 중인 아내 신정순 작가와 함께 기념전시를 했다는 점도 상당히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인연이 닿은 기자는 부부작가로부터 고희기념 동행70 전시와 관련된 안내 초청을 받았다. 전시 장소 역시 10년 전의 그때 그 장소였다. 기자는 부부의 고희 기념전을 직접 참석하고 후일담을 듣기 위해 5월의 첫날,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를 찾았다. 이번 전시 오프닝에는 사단법인 국전작가협회 양태석 이사장을 비롯하여,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김재춘 회장, 사단법인 대한전통명장협회 박해양 회장, 비채나세계운동본부 윤재환 회장 등이 참석해 축하의 말을 전했으며 소프라노 박수정의 공연이 오프닝 무대를 빛냈다.

 

   
▲ [사진 = 소암 박상근 화가]

99.999% 노력에 의해 탄생되는 작품
“난 원래 그림을 하는 사람 이예요. 문인화가로서 40년 넘게 문인화 작품 활동을 이어왔고, 그 속에서 서양화를 하고, 도자기도 하며 판소리, 풍물까지 섭렵할 수 있었죠. 전공으로 업을 삼기보단 취미로써 즐기다보니 풍물 공연도 여러 번 다녔습니다.(웃음) 한땐 궁중 전통요리로 방송도 많이 나갔었고요. 다만 제 활동에 바탕을 두고 있는 부분은 문인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꾸준한 독학파로 알려진 소암 박상근 화백은 전통 기법에 토대를 두되, 자신만의 화풍을 빚어내는 작가로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이를테면 문인화에 비구상을 접목한다든지, 서양화와 수묵화를 콜라보 하는 방법으로 독특하면서도 획기적인 화풍을 이어왔다. 다만 현재는 미술행정가로서 협회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그이기에, 이번 고희기념 전시회에서 부부의 작품을 만난다는 자체가 참으로 특별하기도 했다. 참고로 남편인 박상근 화백의 권유로 신정순 작가가 민화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 남편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고 싶어 붓을 든지도 어언 스무해 째, 신정순 화백은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시작으로 서울시장상, 서울시의회의장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전통미술대전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을 역임했다. 신정순 작가는 “사실 처음 전시를 준비할 때, 다소 망설였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다만 노후엔 취미를 갖고 살아야 더욱 의미 있는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환갑 이후 벌써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흘렀습니다. 이번 고희전을 준비하면서 ‘참 잘했다’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가득합니다. 주변 지인분들부터 오랜 시간 함께 해준 작가님들, 협회를 위해 순수하게 봉사하시는 분들까지 한 분 한 분 너무 고맙고도 벅차올랐습니다. 지금이 다시 시작이라 생각하고 80세가 되어서도 부부전시를 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나의 주변 모든 사람들이 함께 건강해서 10년 뒤에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랄까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입니다”라고 밝혔다.
갤러리 라메르 전관에서 자그마치 전시 규모만 300여점으로 이뤄진 전시다. 간혹 부부 또는 가족이 간단한 전시를 할 순 있겠지만, 사실상 힘든 대규모 고희전을 무려 일주일간 진행하면서 박상근 화백은 ‘우리 작가들이 와서 동행70 전시를 바라볼 때, 모범이 될 수 있고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기반으로 직접 초대를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실력이란 것은 사실 노력이라고 봅니다. 노력 없이 될 수 없는 게 이 일이기도 하구요. 혹자는 그림엔 반드시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지만, 저는 99.999%가 노력에 의해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항상 작가들에게도 강조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저 같은 경우엔 보통 협회 사무실 출근을 아침 7시에 하는 편입니다. 본격적으로 업무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고, 거의 하루 종일 약속이 잡혀있죠. (기자. 빼곡한 하루 중, 그림 작업은 언제 하실 수 있나요?) 때때로 새벽 3~4시에 일찍 나와 그림을 그리거나 주말에 틈틈이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70세가 되었지만, 단 한 번도 주말을 휴일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보통 협회 운영방안 및 계획들을 체크하고 검토하는 활동으로 평일을 채운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주말엔 작품 그리기에 집중을 해왔기에 ‘온전히 휴일이다’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죠. 이번 고희전을 마무리하고 나선, 집사람과 흔한 바캉스라도 한 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 [사진 = 소암 박상근 화가]

전통문화예술을 꾸준히 알려왔다는 자부심
지난 40여년 간 작품 그리기에 더해, 협회 활동까지 빠듯하기만 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화백이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 활동에 몰입했던 이유는 단 하나다. 열악한 미술계에서 작가들이 보다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한편, 전통문화예술을 더욱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 문명이 어마어마하게 들어왔죠. 그야말로 ‘외래물질문명 홍수’라고 표현될 정도로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부터 전통문화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서양 문화가 매우 편하고 좋으니 그대로 일상에 흡수가 되었고, 우리 전통문화가 크나큰 위기에 빠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때 참 괴로웠던 기억이 있네요. 그래서 당시 100대 그룹 회장들을 모두 만나 전통문화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설득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어릴 적엔 주로 사기그릇을 사용했었죠. 다만 외국 문명이 들어오며 가벼운 플라스틱 밥그릇이 밥상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플라스틱 그릇에서 나오는 유해물질이 문제시 되며 2010년을 기점으로 다시 사기 도자기가 재유행을 타기 시작했죠. 이런 점만 보더라도 우리의 전통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던 현장에서도 가장 좋아한다는 천연염색 된 개량한복을 입고 임했던 박상근 화백이다. 과거와 비교해, 전통문화에 대해 편견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는 한편, 심지어 재해석까지 멋지게 해내는 요즘 세대들에 대하여 박 화백은 매우 뿌듯한 심정이 든다고 밝혔다.
“그간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협회를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왔기에,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고, 그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열정을 가지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선후배 예술인들 간에 가교 역할을 하기 위해서도 정말 갖은 노력을 다해왔고요. 저 또한 협회의 이사장이자 회원으로서 대중들에게 왜 전통이 중요하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인지 설파하고 알렸다는 점에서 힘도 들고 돈도 많이 벌지 못했지만, 그보단 큰 자부심을 얻게 되었습니다.”

 

   
▲ [사진 = 소암 박상근 화가]

대한민국 전통문화예술
꾸준히 알려가고파

인터뷰 말미, 고희전에 이어 박 화백의 다음 전시를 또한 기약할 수 있을지 물었다. 그의 소망 또한 다시 10년이 흘러 팔순을 맞이할 때, 아내와 함께 팔순전을 여는 것이었다. “사실 100세 전시회까지 하고 싶은 바람이지만, 건강이 따라줄지 의문이네요.(웃음) 더불어, 협회에서 매년 정기적으로 시행하는 (신인작가 등용문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부터 신춘기획 우수작가 초대전, 여름을 메우는 부채예술대전, 대한민국 그랑프리미술대전(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아트페어 부스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또 하나의 소망이자 계획입니다.”
연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이번 전시와 더불어, 지난 세월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박 화백으로부터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연륜이 한껏 느껴졌다. 특히 작가와 협회의 수장이라는 역할을 모두 겸하며 성실히 시간을 보내온 박상근 화백에게 한편으론 존경심도 들었던 인터뷰였다. “어떤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삶의 애경사에 100명에서 200명 정도 올 수 있다면 매우 성공한 삶이라고요. 이번 고희전 첫날에만 3~400분의 선후배 예술인들이 참석해주시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편으론 너무나도 뿌듯했습니다. 적어도 ‘나쁘게 살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책임감 또한 많이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더욱 잘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그에 상응하는 많은 역할들을 앞으로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지윤석 기자 jsong_ps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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