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보야 노연서 작가] |
초여름 햇살이 한창이던 지난달 3일, 대한민국-벨라루스 수교 32주년을 기념한 문화교류 행사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그랜드관에서 열렸다. 이번 교류전은 벨라루스의 관광 사진 20여점과 벨라루스 출신의 색채 마술사 마르크 샤갈의 작품 11여점, 그리고 한국 민화작가 30명의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특히, 이날 현대민화 작가 보야 노연서 작가가 ‘DMZ의 봄 무궁화’를 전시해 주목을 받았다. 노 작가는 “저는 DMZ 접경지역인 파주에서 실제로 살고 있기에 오랫동안 갈라져 있는 남과 북에 대한 감정이 더욱 남다르던 차였다. 좋은 기회로 무궁화와 DMZ를 소재로 민화 작업을 하게 되었다. 비록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은 살아나고 여전히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음을 의미하고 싶었다. 이번 문화예술교류전을 계기로 꾸준히 세계적인 평화를 구현하는 확장된 작품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노연서 작가의 한-벨라루스 수교 32주년을 기념하여 완성된 ‘DMZ의 봄 무궁화’는 전시를 거쳐 벨라루스 대사관에 기증되었다. 본지는 8월 벨라루스 기획특집을 통해 노연서 작가와 직접 일문일답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 한-벨라루스 수교 32주년 기념 문화예술교류전에 ‘DMZ의 봄 무궁화’를 전시 및 전달하신 바 있다. 이번 벨라루스 기획 특집을 맞이해 작가님의 활동이 주목되는 바다.
노연서 작가. 감사하다. 문화예술교류전을 준비하며 찾아보니, 벨라루스 또한 역사적으로 폴란드, 독일,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나라와 닮아있는 정서가 군데군데 분명히 있더라. 저는 현재 파주에 살고 있고 같은 이유로 자연스레 DMZ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히도 반가운 제안이 들어왔다. 전통민화 교육을 하시는 명지대학교 미래교육원 문화콘텐츠과 이미형 주임교수께서 말씀해주신 한-벨라루스 수교 32주년 기념 문화예술교류전 관련 건이었다. 저는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했다. 제안을 주셨고 곧바로 하고 싶더라. ‘DMZ의 봄 무궁화’에는 국가가 작건 크건 어느 나라에서 새로운 봄, 즉 시작이 열린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 평화에 상징되는 매개체는 바로 무궁화였고 DMZ 요소를 콜라보하여 전시도 하고 작품을 기증하게 되었다. 뭐랄까. 요즘의 저는 참 오묘한 설레임과 신기함으로 가득차 있다. 이렇게 민화작가로서 좋은 경험을 했다는 것과 함께, 행복을 기반으로 행복낚시, 오뚝이 컨셉, 달달 무슨달 시리즈에 이어 DMZ의 봄까지 선보일 수 있어 보람있다. 무엇보다도 제 마음속 ‘행복’이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삶의 태도 및 방향성이 잘 맞물려 작품이 나오게 됨에 기쁘게 생각한다.
기자. 제27회 세계평화미술대전에 운영위원으로도 참여하신다고 알고 있다. 기존의 작품적 가치관인 행복과 긍정에 이어 평화까지, 보다 폭이 넓어진 모습이다. 작가님이 그리시는 행복화의 작품적 모토가 궁금해질 정도다.
노연서 작가. 과거엔 그저 행복을 찾아 쫓아만 다녔던 것 같다. 행복을 참 어렵게 생각했다. 행복은 그저 멀리있는 것이라고 여긴 채, 어렵고 힘든 과거만을 머리에 이고 살았다. 마치 주눅이 드는 삶과도 같았다. 행복은 아직 먼 이야기이며 삶의 방향성에 있어 슬픔을 크게 확장한 모습이었다. 제 꿈은 원래 동화작가였다.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고, 장래에 대해 크게 대성한 동화작가를 기대했었다. 다만 맘처럼 쉽진 않았다. 그림에 대한 욕망이 남아 있었으니, 다양한 분야를 접했고 민화를 배우게 됐다. 그리고는 삶을 향한 태도가 전부 바뀌었다. 보통 일반적인 그림은 작가의 감정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내가 슬프면 슬픔의 감정, 내가 어둡다면 어두운 감정으로 그림에 몰입되는 것이다. 다만 민화는 기자님도 아시다시피 상징성이 들어가 있지 않나. 행복과 복, 부귀영화부터 길상의 의미까지 한데 모두 가미되어있다. 그렇게 의미를 상징해서 민화를 그리다보니 어느덧 내 마음이 정화되어 있더라. 인생에 있어 사건·사고가 일어나도 별게 아닌게 되는 것이다. 만일 민화를 진작에 만났더라면 삶은 그저 파도마냥 흘러갔을텐데 하는 아쉬움 또한 들 정도였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들이 별 것이 아닌게 되고, 머리에 이고 있던 짐덩이가 전부 사라지는 것. 하루하루가 즐거워지고 무언가를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게 보였다.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봐도 행복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기자. 이야기를 듣다보니 저 역시 행복감에 젖을 정도다. 행복의 주체인 민화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오뚝이 컨셉과 더불어, 달달 무슨달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작가님 작품의 변천사를 듣고 싶다.
노연서 작가. 행복 이야기로 좀 더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서양화와 수채화,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림을 칠하면 칠할수록 어두워진다. 그에 반해 민화는 ‘바림’이라는게 있는데 터치할수록 더욱 맑고 영롱해지는 기법이다. 어느덧 내 마음가짐도 그렇게 되어버렸던게 아닐까. 그렇게 매료가 되어 이젠 민화를 그리지 않으면 좀이 쑤실 정도다. 즉, 민화를 알고나서 ‘행복은 내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셈이다.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닌, 힘든 일에 대한 반응은 온전히 내 몫이라는 걸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이상하게 그 다음부턴 상당히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구름 위를 둥둥 떠오르듯 행복이라는 보호막이 날 지켜주는 듯 했다. 요즘 현대사회에 많은 문제들이 있다. 특히 외로움부터 우울증까지 철저히 소외되고 혼자라고 느끼는 이들에게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메시지에 담고 싶어서 행복낚시를 그리게 되었다. 지금도 민화 작업을 하면서 행복을 의미하는 한편, 전달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점을 계속 구상한다. 다른 작품을 보면서도, 또는 이를테면 일상에서 자연을 바라보면서도, TV시청을 하면서도, 음식을 맛보면서도 늘 행복에 골몰한다. 오뚝이 컨셉 또한 마찬가지다. 보통 사람이 힘들고 아프면 그저 드러누워있지 않은가. 몸과 마음이 좌절하는 것이다. 오뚝이는 툭툭쳐도 반자동처럼 일어나던데, 사람들도 저렇게 살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뚝이의 눈, 귀, 입을 자세히 살펴보면 꽃모양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뚝이를 바라보며 꽃을 떠올리게 되면서 생각했다. ‘모든 것을 꽃으로 바라보면, 꽃으로 보이고 꽃처럼 말하게 된다고, 꽃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다고’ 말이다.
기자. 인터뷰를 하다보니 작가님께선 파주와 참 묘한 인연이 있다. ‘DMZ의 봄 무궁화’부터 거주하고 계신 부분도, 파주시청 마을지원팀 주무관으로서 활동하고 계신 부분도 말이다.
노연서 작가. 모두 너무 감사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파주에 뭔가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 파주 문자도도 그런 의미에서 작업을 했던 것이다. 업무적으로도 공공디자인 및 벽화 작업에 참여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다. 여기서도 민화 이야기를 빼놓을 순 없을 것 같다.(웃음) 민화를 하면서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정말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다. 직장 생활을 통해 더욱 인간으로서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을 민화와 함께 긍정적으로 깨닫게 됐다고 할까. 민화를 그리는 시간만큼, 그리고 파주시를 위해 일하는 것까지 모두 너무나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안다. 사실 ‘파주’ 하면 대개 사람들은 신도시만을 떠올린다. 다만 발전되는 곳이 있다면 또한 소외되는 지역이 있을 수 있다. 저는 직장인이기도 하지만 작가이기도 하지 않나. DMZ에 인접한 파주는 곧 현실이지만, 민화의 긍정에너지를 기반으로 파주를 더욱 아름답게 꾸미길 원한다. 창작의 욕심이 있기에, 한편으론 작가로서 어떠한 결과물을 그려야겠다는 마음가짐이 내재되어 있다. 파주시 직원으로서, 그리고 민화작가로서도 좋은 삶을 많이 알아갈 수 있는 하나 하나의 단면들을 그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행복화로 인해 가능한 다짐들이다.
기자.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현대민화, 창작민화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더불어 민화는 작가님께 있어 어떠한 의미일까.
노연서 작가. 창작민화는 ‘표현의 자유’가 특징이다. 폭넓은 주제인 ‘긍정’이라는 에너지를 민화에 얼마든지 접목시킬 수 있는 그 매력이란 정말 말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즉, 틀에 갇히지 않고 표현이 매우 자유롭다는 점을 꼽고 싶다. 저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계속 느끼시겠지만 민화는 저에게 행복한 에너지이자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는 대상이 저에겐 민화 작업인 셈이다.
기자. 지난달 초,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창작민화 11기로서 졸업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하셨다. 특별히 민화작가로서 작가적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이 궁금하다.
노연서 작가. 전통민화를 그리던 제가 창작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었던 건, 사사받은 아정 이현자 선생님의 진심어린 조언과 도움이 정말 컸다. 그렇게 행복을 담은 민화展을 하게 되면서 월간민화 유정서 국장님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유 국장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시면서 제 작품에 대한 칭찬을 해주시곤 월간민화에 작품을 소개해도 좋을지 제의를 해주셨는데, 저는 너무나도 놀라 거짓말로 느낄 정도였다. 사실 저는 좀 전에도 말씀을 드렸듯 동화작가가 꿈이었고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기에 창작민화 작품에 임할때마다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특징이 있었다. 그 과정이 저에겐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유 국장님의 말씀이 그저 과분했다. 그렇게 유정서 국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시고 민화 정신 또한 확장해주셔서 더욱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새바람, 신바람 10인전부터 옛멋새멋 기념전, 스페인 말라가 시청초청 한국민화 특별전까지 좋은 기회들을 연이어 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이다. 최근 마친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창작민화 교육자과정을 통해서도 정말 열정 넘치는 교수님들을 만나뵐 수 있었다. 이 곳은 저에겐 앞으로 친정같은 곳이 될 것만 같다. 매주 일주일에 한번씩, 그림을 그리고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저에겐 참 행복한 나날이었다. 앞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선 더욱 다양한 작품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창작민화는 선후배간의 유대관계가 너무나도 좋기에 저에겐 든든한 울타리가 되는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기자.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지면에 꼭 덧붙이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리겠다.
노연서 작가. 행복함이 묻어나오는 민화작가로 기억되고 싶다. 사실 저의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모른다. 넓은 작업실에서 더욱 큰 대작을 하고 싶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파주에 민화학교를 확장하여 만들고픈 마음도 있다. 예술인들이 한 곳에서 소통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고 싶다. 당분간은 지속적으로 단체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짐에 또 한번 마음이 고맙다. 언젠가 외국에서도 한번쯤은 단독 개인전을 진행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 작품 전시가 많이 열리는 것처럼, 반대로 우리나라 민화의 멋을 외국에 알릴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더불어, DMZ와 관련된 또 다른 작업을 규모있게 해서, 많은 분들이 ‘평화’라는 대상을, 그리고 파주를 기억해주실 수 있도록 실천에 옮기고 싶다. 파주시에서 마을디자인컬러도 담당하고 있지만, 더욱 확장된 결과물을 내고 싶은 마음에 최근엔 건축공장기능사 자격도 획득했다. 벽화작업을 포함해 무미건조한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도 하고 싶다. 저는 서울 정릉이 고향이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직접 페인트를 구해와 부엌을 칠하곤 하셨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꼭 커서 할머니 집을 예쁘게 꾸며드려야지’라는 마음을 품었었다. 그랬던 마음을 비로소 어른이 되어, 파주에서 실천하고 있다는 점도 개인적으론 신기하다. 현재, 겸직허가를 받고 파주문화원에서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민화작업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지만 민화를 가르치면서 참 많은 힐링을 하고 있다. 아마도 민화가 뿜어내는 행복에너지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행복으로 감사함과 겸손함을 느끼며 앞으로도 열정적으로 민화 그리기에 임하고 싶다. 끝으로 다가오는 10월, 스위스 취리히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제26회 2024 ART INTERNATIONAL ZURICH에서 행복낚시를 선보일 계획이다. 좋은 기회를 마련해준 하랑갤러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많은 성원과 관심을 함께 부탁드린다.
지윤석 기자 jsong_ps1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