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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각에 매료돼 나무와 칼 끝에 보낸 성정의 세월”

기사승인 2022.05.18  12: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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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강 신재구 ⌜나무의 말을 듣다⌟ 서각전...한 공간에 모여 ‘훈훈’

   
▲ [사진 = 다강(茶江) 신재구(申在九)]

 “처음 서각(書刻)에 입문할 땐, 한 1년쯤 하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새길 것처럼 자신만만하였다. 하여, 밤낮없이 구부리고 앉아 작업에 몰두했다. 두 해를 보내고 서너 해가 지나도 점입가경(漸入佳境)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칼과 끌과 망치와 애증(愛憎)에 빠져 버렸다. 나무에 무늬를 새기고 문양을 넣고, 시(詩)의 행간을 따라 다녔다. 어떤 날은 서법(書法)의 기운생동에 취해 저절로 무릎을 치곤 하였다. 천지간의 유형과 무형 사이에 헤매었다. 자연스레 ‘나무의 말’을 따라 새기다 보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그때 나의 소원은 나무와 한 몸이 되는 것이었다.” < 2022년 봄, 다강(茶江) 신재구(申在九) >


오랜 기간 서각 몰입, 전통 현대 아우러진 작품 완성

서각(書刻)은 나무나 기타 재료에 글씨나 그림, 문양 등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시(詩), 서(書), 화(畵)에 견줄 만큼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글(文)과 칼(刀)의 만남으로 그 어떤 예술보다도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발전되어 종합예술로 거듭해 가고 있다.

대구시 달서구 월배로 30번지 국제전기 빌딩. 다강(茶江) 신재구(申在九) 서각가가 일생에 걸쳐 국내외 미술품을 모은 ‘주안갤러리’ 와 그의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1층은 조명기구 매장, 2~3층은 작품이 있고, 4층은 작업 공간이 꾸며져 있다. 다강(茶江)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서각(書刻)을 한다. 그는 오랜 기간 다져온 작품으로 4월 25일, 정부대구합동청사 전시관서 『나무의 말을 듣다』 타이틀로 첫 번째 서각전(書刻展)을 열게 됐다. 전시를 앞두고 그는 “고졸하고 품격있는 ‘한국의 미’를 발견하고 싶었다”고 피력했다.

앞서 다강(茶江)은 주요 미술대전에서 문체부장관상(한국의 멋), 통일부장관상(무궁화)을 수상한 바가 있었다. 이번 서각전은 이런 작품들을 포함해 대중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망라되었다. 작품 대다수는 다강(茶江)이 오래도록 함께 한 존재들로 의미가 깊고, 감회도 매우 크다. 지난 74년부터 서각(書刻)을 시작해 한꺼번에 선보이는 건 48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전시가 늦어진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전기공사 업을 오래도록 하며 식솔을 책임지고, 주변과 지역에 봉사하는 시간이 많았다. 작가라면 흔히 작품에만 몰두해 주변은 잘 안 돌보는 특성이 있다. 이와 비교할 때 다강(茶江)은 그런 점이 안 비쳐진다. 세상을 넓게 보는 시각과 부지런함으로 생업 외에 문화예술에 오롯이 인생을 바쳤다. 문화는 그에게 ‘삶’ 이상의 존재였다. 틈이 날 때마다 여기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자신의 일을 이루면서 주변의 어려운 작가들도 돕고 굵직한 전시도 기획했다. 유명 컬렉터일 뿐 아니라 전국으로 뛰고 작업하는 흔치 않은 아티스트인 셈. 이런 가운데 자신만의 스타일로 서각(書刻)에 모든 혼을 불어넣었다.

다강(茶江)은 초기부터 전통과 현대를 아우른 서각(書刻)을 해왔다. 그는 나무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작업에 매진했다. 나무 재질은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한다. 뛰어난 미술품을 보는 안목만큼 나무의 재질을 선별하는 안목도 상당한 수준이다. 다강(茶江)은 필법과 양음각, 나무 등에 이르기까지 서각(書刻)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미래의 방향까지 균형 있게 보았다. 그렇게 전통예술로 분류되던 서각(書刻)을 전각, 서예, 회화 등과 통합한 예술로 더 나아가 대중이 즐길 수 있는 문화로 확장시켜 나갔다.

장르 벽 뛰어넘어 자유로운 구성, 종합예술로 발전

인간은 누구나 마음을 표현해 전하고자 하는 본능 욕구가 있다, 이러한 본능은 원초적 조형 활동으로 문자를 창제하게 됐는데, 문자를 새기는 영원불멸의 방법은 문화발전의 도화선이 되었다. 서각(書刻)의 역사는 문자(文字)나 회화(繪畵)를 길이 후세(後世)에 남기려고 한 행위로 목재나 석재, 또는 다른 재질에 기록해 표현 욕구(表現欲求)를 한 것이 시작이다. 서예와 함께 생활과 직접 부대끼면서 응용하고 삶에 멋을 추구하고, 고도의 정신세계와 품격 높은 멋을 향유하게 했다.

다강(茶江)은 전통 양식에서 현대 서각과 조형적 관계를 연구해 정적인 공간을 동적인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조각의 사상과 기법의 바탕이 되는 나무의 재질까지 꾸준히 관찰했다. 그의 작품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 보자. 다강(茶江)은 제일 먼저 현대미술의 특징인 장르와 장르 간의 접목과 통합화를 통하여 고정된 장르의 벽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기본 서체부터 훈민정음 판본체, 캘리그래피까지 폭넓게 들여다 봤다. 과거의 삶을 소환해 서각에 조명한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신윤복의 ‘미인도’. 훈장님의 ‘회초리’, 70년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아이스께끼’ 등은 추억을 돋게 만든다. 둘째는, 강력한 입체표현이다.

과거의 서각(書刻)이 소극적인 각법에 머물렀다면 현대 서각은 적극적인 각법을 통해 전통 서각에서 맛볼 수 없었던 입체감, 양감, 촉감, 박진감까지도 불어 넣어 감상의 범위를 제고시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되어라’ ‘찻잔’ 등이 그런 점을 잘 충족시켜는 작품으로 꼽힌다. 셋째는, 색채의 아름다움이다. 현대 서각은 서예와 조각, 회화로 이어지는 종합예술이다. 조형예술의 기본 표현인 색채 사용을 통해 공간의 질과 양의 느낌까지 갖게 함은 매우 중요하다. ‘어머니의 기도’. ‘삶의 고뇌’(아버지), ‘어깨동무’, ‘일월오봉도’ 등이 좋은 사례다. 넷째는, 문자의 시각적 표상화다.

언어 표상의 서고에서 시각 표상의 서고를 함으로 문자의 단순한 나열이 아닌 새롭고 종합적인 조형 작업 시도가 잘 드러나 있다. 표준 서체의 양각도 있지만 다양함을 추구해 일상적 서체와 양식이 주는 한계성에서 탈피해 자유스러운 표현으로 이어지는 것이 주목된다. 작품 ‘심’(마음), ‘모성애’, ‘참새’, ‘초심’(쌀밥), ‘즐길락’ 등이 그렇다. 가장 주목되는 건 ‘한국의 멋’(문체부장관상 수상) 작품이다. 이는 학이 들어간 청자상감 문매병(국보 68호)에 토기와 금관 등이 새겨진 것이다. 그야말로 현대 서각에 더할 나위 없는 독자성과 우수성, 예술성이 집약된 걸작으로 꼽힌다. 입체적 표현예술에서 역사성, 의미의 표현성 부각 등 중요한 모든 요소가 담겼다. 단순한 새김기법에서 벗어나 서고(書稿)와 장법(章法), 각법(刻法)과 필법(筆法)에 따른 선질과 채법(彩法) 등 표현방식이 압축되었다.

결론적으로 다강(茶江)의 예술은 현대 서각(書刻)이 지닌 자연스런 서체, 구성력과 조형성, 각법의 입체성, 채법의 다양성, 감각에 의한 시사성과 유머러스까지 골고루 갖춰져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대중적 요소로 재미와 즐거움, 훈훈함이 더해져 관람객의 기대감을 한층 높여준다.

서각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예술’ , ‘채움’ 과 ‘비움’ 의 미학

“세상살이가 다 그렇듯 좋은 나무가 되려면, 덥고 추운 날씨 속에 걷고 틀어야 한다. 바닷물에 다년간 몸을 담궈 견뎌야만 뒤틀림이 없다. 성격이 급한 놈은 물렀고, 천천히 자란 나무는 단단하였다. 나이테가 촘촘하고 잔가지가 없는 놈은 울림소리가 좋았다. 각에 알맞은 향기로운 나무를 정하는 일이 내겐 가장 까다로웠다.”

서각(書刻)은 나무의 선별부터 칼, 끌, 망치로 글과 그림을 새기는 일이라 그 과정은 노동이나 다름없다. 미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작업이다. 수도하듯 자신과 싸우며 수 십만번 칼과 망치질 끝에 완성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새김 작업을 하면 손이 성할 리가 없다. 손은 부르트고 손톱까지 빠지는 수난을 감내해야 한다. 허리나 목도 갈수록 온전치가 않다, 칼이나 망치는 닳게 되면 새것으로 장만할 수 있지만, 몸은 그 상태로 누적되어 이어진다. 다강(茶江)은 불의의 교통사고까지 겹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수 개월간 하반신을 제대로 쓰지 못해 지팡이에 의존해야 했다.

누구보다 건강을 자신했던 그는 성한 곳이 없었고, 부자연스럽게 침잠의 시간이 흘러갔다. 이를 두고 다강(茶江)은 “손과 팔목과 허리가 삐걱거리기 시작하였다. 수술을 당하고서야 서각(書刻) 무서운 줄 어렴풋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다강(茶江)은 서각의 매력을 감추지 않는다. 그는 “오랜 기간 서각(書刻)으로, 대범한 직선과 곡선 미학을 통해 격조 높은 서각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나에게 서각은 오랜 시간 나무의 본성을 체득한 시간이었다. 오묘한 양각(陽刻)과 음각(陰刻)의 그 비밀한 균형과 비례의 맛을 알아 버렸다”고 했다. “어찌 보면 나무는 곧게 서서 하늘 허공에 대고 무형각(無形刻)을 새기는지도 모른다. 봄은 매화를 통해 꽃으로 각을 하고, 여름은 가지를 통해 초록의 각을 하고, 가을은 단풍을 통해 붉은 무늬를 새김하는지도 모른다. 하여, 겨울 산은 온통 폭설로 돋을 새김을 한다. 천지 만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새기는 작업임을 알겠더라.”

이렇게 오랜 기간 체험한 다강(茶江)은 “‘서각(書刻)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 예술’ 이며, ‘채움’과 ‘비움’의 미학이다”고 강조한다. 그는 “수년간 나무를 만지면서 과한 복을 얻었다” 면서 “내 서각(書刻)의 바탕이 되어준 시인 묵객과 자연에 감사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지난 시간 지역의 문화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었던 것에 큰 보람을 가졌다. 앞으로도 이런 노력을 이어갈 생각이다”고 전했다.
 

홍기인 기자 forum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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